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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페르소나(카를 구스타프 융)

by justcallmeKai 202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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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Persona

카를 구스타프 융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입니다. 초기에는 프로이트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나 머지않아 결별한 후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분석 심리학을 창시했습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의 연구는 심리학뿐만 아니라 인류학, 고고학, 문학, 철학, 종교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페르소나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인격(Personality)은 그 자체의 정의로 볼 때 본래 짧은 시간에 크게 변화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상황이나 주변과의 관계를 위해 인격을 달리 포장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사람이 바로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입니다.

 

그는 인격 가운데서 외부와 접촉하는 외적 인격을 페르소나(Persona)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페르소나는 원래 고전극에서 배우가 사용하는 '가면'을 의미하는데, 융은 페르소나를 한 사람의 인간이 어떠한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는가에 관한, 개인과 사회적 집합체 사이에서 맺어지는 일종의 타협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가면이 페르소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실제 타협의 범위가 그다지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어디까지가 가면이고 어디까지가 얼굴인가' 하는 물음이 따라다닙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시로는 팬터마임을 예술의 영역까지 끌어올려 침묵의 시인이라고 불린 배우 겸 연출가 마르셀 마르소의 퍼포먼스의 한 장면이 있습니다. 극 중에서는 자기가 쓰고 있는 가면이 벗겨지지 않아 애를 먹는 피에로가 등장한다. 마르셀 마르소의 연기 자체가 박진감 넘치기도 하지만, 이 '쓰고 있는 가면이 벗겨지지 않는 이야기'에는 우리의 등 줄기를 서늘하게 하는 무언가 본질적인 것이 숨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작곡가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는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소재로 한 오페라입니다. 극 중에서 주인공은 극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해 아내를 죽이고 맙니다. 이는 마르셀 마르소의 퍼포먼스와는 반대로, 본래 가면을 쓰고 지내야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그만 얼굴을 노출시키고만 상황이 얼마나 큰 위험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보여 줍니다. 가면과 맨 얼굴의 경계가 애매해진다는 모티브에 우리가 끌리는 이유는, 자기 정체성이나 인격이 실제로는 매우 취약하며 외부 환경에 따라 왜곡되기도 하고 감추고 싶었던 무의식이 표출될 염려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속된 조직의 분위기에 따라 자신의 실제 성격과는 다른 가면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시절을 후에 돌이켜보면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매우 중립적이고 계층이나 계급을 싫어하며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로 근성론과 감정론에 치우친 전체주의를 혐오하는데, 그런 자신이 계층 의식이 매우 강하고 군대처럼 권위주의적인 행동 양식을 요구하는 회사나 근성론과 전체주의가 합리성에 앞서는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면서 조직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 자신의 소신껏 행동하기란 무척 어렵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나답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은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후에는 자신이 그 당시에 본래 나의 모습과 상당히 다른 가면을 무리해서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에는 스스로 이를 자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 즉 페르소나와 진짜 자신과의 불일치가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모든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인격은 다면적이어서 우리는 실제로 어떤 장소에서 걸치고 있던 페르소나를 다른 장소에서는 또 다른 페르소나로 바꿔 쓰면서 어떻게든 인격의 균형을 유지해 살아갑니다. 인간이 어느 정도 마음 편히 살아가고자 한다면 일종의 다중인격도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이를 무척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바로 휴대전화입니다.

 

사람은 소속된 회사나 학교, 가정, 친구 관계 또는 동호회나 사교 모임 등과 같은 여러 커뮤니티 속에서 다양한 입장과 역할을 갖고 있게 마련이지만, 그들이 반드시 일관된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낮에는 부하들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무서운 임원이 밤에는 친구들과 모여 노래방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인격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성립되고 유지되어 온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입장이나 역할을 종적인 사일로(Silo,기업 내의 어떤 부문이나 부서가 외부와 정보를 공유하거나 연계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고립된 상태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개인이 속한 다양한 입장과 소속, 즉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뜻합니다)라고 생각할 경우, 그 사일로를 횡적으로 연계시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일로 자체는 자신이 만들고자 해서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인생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어느 사이엔가 만들어진 것도 있습니다. 반드시 모든 사일로를 충분히 납득하고서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사일로들이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룸으로써 사람이 인격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 사일로의 강렬한 횡적 연계가 시작됩니다. 가령, 집단 따돌림은 아마도 고대부터 있었을 텐데 요즘에 와서 특히 문제의 심각성이 커진 이유는 아이들이 학교와 가정이라는 두 개의 사일로를 구분해 행동하지 못하게 된데 있습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는 학교에서 아무리 심한 일을 당해도 집에 돌아오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학교와는 일단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휴대전화라는 가상의 횡적 연계 매체가, 학교라는 사일로에서 심리적으로 분리되기를 바라는 아이에게 그런 상황을 허용해 주지 않습니다.

 

이는 회사원이 가정과 직장, 그리고 개인이라는 세 가지의 인격 요소를 구분해서 생활하기가 어려워진 것과도 같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어느 장소에 있든, 또한 어떤 사회적 입장에 있는 회사원으로서의 페르소나와 가정의 일원으로서의 페르소나가 따라다닙다. 이렇게 되면 여러 개의 사일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 잘 살아가야 할 인류가 고대에서부터 지속해 온 생존 전략 자체의 기능을 잃게 되는데, 사실 이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대로 계속 흘러간다면 다다르게 될 결론은 단순합니다. 여러 개로 분산되어 있는 사일로를 균형 있게 유지하던 전략이 더 이상 기능을 못하고 사일로가 하나하나 쇠퇴해 가며 마음에 들지 않는 사일로나 스트레스 수치가 높은 사일로에서부터 차츰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도망친다'는 단어는 앞으로의 인생 전략을 새로 구상하는 데 중요한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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