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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르상티망(프리드리히 니체)

by justcallmeKai 2024.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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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르상티망

프리드리히 니체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독일의 철학자이자 고전 문헌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유명합니다. 박사 학위도 교원 자격증도 없는 채로 스물네 살의 젊은 나이에 스위스 바젤 대학교의 고전 문헌학 교수로 초빙되었지만 첫 번째 책인 비극의 탄생이 학회로부터 무시당하고 건강상의 문제까지 겹쳐 대학을 사직한 후에는 재야의 철학자로 일생을 보냈습니다. 니체의 문장은 독일어 산문의 걸작으로 손꼽혀 독일에서는 국어 교과서에도 자주 실린다고합니다.

르상티망

르상티망(ressentiment)을 일반적인 철학 서적에서처럼 정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입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시기심입니다. 시기심이라는 니체가 제시한 르상티망은 우리가 시기심이라고 여기지 않는 감정과 행동까지도 포함한 조금 더 넓은 형태의 개념입니다.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개인은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첫번째로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예속, 복종하며, 두번째로는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판단을 뒤바꿉니다. 이렇게 문장으로 보면 어려울 수 있으나 '여우와 신 포도'라는 이솝 우화에서 이러한 행동 양식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우가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발견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손이 닿지 않았고, 결국 이 여우는 "이 포도는 엄청 신 게 분명해. 이런 걸 누가 먹겠어!"라고 하며 가 버렸습니다. 이는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의 전형적인 반응에 해당합니다. 여우는 손이 닿지 않는 포도에 대한 분한 마음을 '저 포도는 엄청 시다'라고 생각을 바꿈으로써 해소하고, 니체는 바로 이 점을 문제 삼아 우리가 갖고 있는 본래의 인식 능력과 판단 능력이 르상티망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르상티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예속하고 복종함으로써 그 감정을 해소하려고 합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명품 가방을 갖고 있는데 자신만 없는 상황 속에서 진정으로 누군가는 명품 가방이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물건이 아니며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수준의 명품 가방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이 품고 있던 르상티망을 해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특별히 명품 가방이나 옷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급 자동차나 명품 시계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고급 브랜드 상품이 시장에 제공하고 있는 편익을 르상티망의 해소로 볼 수 있고, 르상티망을 품은 개인은 르상티망을 해소하기 위해 상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르상티망을 새로 만들어 내면 낼수록 이 시장의 규모 역시 커지게 됩니다. 명품 의류 브랜드나 고급 자동차 회사가 매년 새로운 컬렉션과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는 이유는 르상티망을 꾸준히 만들어 내기 위해서 입니다. 최신 상품을 끊임없이 시장에 내보냄으로써 오래되거나 유행이 지난 물건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르상티망을 주입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르상티망에는 제조원가가 없기 때문에 아이디어만 있다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무한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에 비싼 값을 매기므로 돈을 못 벌 수가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물건이 넘쳐나 포화상태임에도 오늘날 명품 시장이 대체로 호조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업계 관계자들이 극히 교묘하게 르상티망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르상티망은 상징을 구입하는 형태로 해소되는데, 그리하여 명품 브랜드의 판매 실적은 경제 저성장 사회에서도 꾸준히 상승세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이러한 형태로 르상티망을 계속 해소한다 해도 '자신다운 인생을 살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르상티망은 사회적으로 공유된 가치 판단에 자신의 가치 판단을 예속 또는 종속시킴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무언가를 원할 때, 그 욕구가 '진짜' 자신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혹은 타인이 불러일으킨 르상티망에 의해 유도된 것인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이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반응, 즉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예속되고 복종하는 일의 위험성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판단을 뒤바꾸는 일의 위험성에 관해 알아봅시다. 니체가 르상티망 문제를 다룬 것도 바로 이 두 번째 반응 때문이었습니다. 니체에 의하면 르상티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용기와 행동으로 사태를 호전시키려 하지 않기 때문에 르상티망을 발생시키는 근원이 된 가치 기준을 뒤바꾸거나 정반대의 가치 판단을 주장해서 르상티망을 해소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니체는 대표적인 예로 기독교를 들었습니다. 니체에 따르면 고대 로마 시대에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에 있던 유대인은 줄곧 빈곤에 허덕이는 삶을 사는 반면 부와 권력을 가진 로마인, 즉 지배자를 선망하면서도 증오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바꾸기도, 로마인보다 우위에 서기도 어려웠던 그들은 복수를 위해 신을 만들어 냄으로써 '로마인은 풍요로운데 우리는 가난으로 고통 받고 있다. 하지만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우리 쪽이다. 부자와 권력자들은 신에게 미움 받고 있어서 천국에는 갈 수 없다'는 논리를 세웠습니다. 니체는 신이라는, 로마인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가공의 개념을 창조함으로써 현실 세계의 강자와 약자를 반전시켜 심리적인 복수를 꾀한 것이라고 이 현상을 설명합니다. 이는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열등감을 노력이나 도전으로 해소하려 하지 않고 열등감을 느끼는 원천인 '강한 타자'를 부정하는 가치관을 끌어내 자신을 긍정하려고 하는 사고관입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사고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사내가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 갈 필요 없어. 파스타 체인점으로 충분해."라고 말했다고 가정합시다. 그저 순수하게 별 뜻 없이 한 말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니다. 이 주장에는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은 격이 높고 파스타 체인점은 격이 낮다는 가치관을 일부러 뒤집어 보이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위 사례를 면밀히 들여다 보면 애초에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슐랭 가이드 도쿄 2018을 보면 별 세 개나 별 두 개를 받은 프렌치 레스토랑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실제로 가 보면 바로 알 수 있듯이 레스토랑마다 분위기와 나오는 요리는 서로 완전히 다릅니다. 당연히 "칸테스는 무척 좋아하지만 로뷔숑은 좀......" 하고 평가하는 게 가능할 뿐만 아니라, 고급 프랑스 요리라고 일괄적으로 묶어서 좋고 나쁨을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이라고 불리는 가게들은 이미지 세계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상징에 불과합니다. 추상적인 상징과 실제의 레스토랑을 비교해 어느 쪽을 좋아하고 싫어하느냐고 논의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사실 처음부터 이러한 비교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누군가는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 갈 필요 없어. 파스타 체인점으로 충분해" 같은 공허한 주장을 하는 것일까요? 마음속 깊은 곳에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은 격조 높은 음식점이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세련된 취미와 미각을 갖고 있다는 일반적인 가치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해서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다라는 가치 판단을 뒤엎고 싶다는 르상티망이 내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은 허황된 가치관에 물들어 있지 않으며 시대를 앞서가는 쿨한 사람이라고 도취되어 있을 확률이 높고, 만약 그렇다면 솔직하게 "나는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는 별로 가 본 적이 없지만 파스타 체인점도 아주 맛있어"라고 하면 될 것이고, 더 나아가 단순히 "나는 파스타 체인점을 좋아해"라고 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하지 않는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말해서는 자신의 르상티망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추상적인 상징에 지나지 않는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이라는 개념을 끌어내 파스타 체인점과 가치를 비교하고 나서 자신은 후자를 좋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자를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내세우는 데 중점을 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판단을 뒤바꾸려고 한다'는 니체의 지적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니체의 주장을 덧붙이자면, 르상티망을 가진 사람은 르상티망에 기인한 가치 판단의 역전을 제시하는 언론 등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니체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설파한 '성서'를 위와 같은 형태의 전형적인 콘텐츠로 꼽습니다. 그 밖에 노동자는 자본가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한 '공산당 선언'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서'와 '공산당 선언' 모두 전 세계에 폭발적으로 보급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르상티망을 품은 사람에게 가치의 역전을 제안하는 것을 일종의 '킬러 콘셉트'로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성서가 잘못된 가치관이라는 주장이 아니라, 고대 이래 철학자의 저서를 비롯한 수많은 킬러 콘텐츠들에 당시 중요했던 가치 판단을 역전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를 든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 판단의 역전'이 단순히 르상티망에 기인한 것인지, 더 숭고한 문제 의식에 뿌리를 둔 것인지 잘 판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르상티망이라는 복잡한 감정과 그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말과 행동의 유형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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